욕망과 변절 사이, 손석형과 박용진의 경우 정치

이글은 대자보 2012-01-30일자 기사 '욕망과 변절 사이, 손석형과 박용진의 경우'를 퍼왔습니다.

지금 창원 지역은 손석형 전 경남도의원의 중도사퇴 가지고 말이 많다. 진보정치의 대의를 져버렸다느니, 도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느니 하는 비난이 턱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왜 내 마음을 울리지는 못하는 걸까. 나는 총선 출마를 위해 지방의원직을 내던진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할지 모르겠다. 

 

끝까지 현 직분을 완주하는 것이 박수 받을 만한 일이긴 하겠지만 다음 총선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고 개인으로서 손해 봐야 할 것이 많다. 지방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일일까. 재선거 비용? 비용을 따지자면 선출 제도만큼 낭비적인 것은 없다. 

 

더 근사한 자리,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바탕에 자리한 기본적인 욕구일 것이다.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신의 그릇이 국민의 대표라고 믿는 사람을 굳이 뜯어말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 월등한 책임과 능력이 요구되는 일에 도전하겠다는데 그런 부분까지 비난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성공이든 실패든 전적으로 자신이 감당할 몫일 터. 정치인은 도덕군자를 뽑는 것이 아님과, 인간에게 내재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도리어 정치의 수준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큰물에 도전하기 위해 도의원직을 물러나는 것이 욕먹는 일일 정도로 정치를 순백무결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어쩌면 지금의 정치판이 워낙 지저분하고 더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보신당 창당 주역이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격변의 기회를 틈타 몇 단계 건너 뛰어 민주통합당으로 향하는 세상은 이익 앞에 지조도 원칙도 없는 한국 정치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진보주의자가 하루아침에 보수기득권 세력에 투항하는 것이야 한두 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가 순결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내가 보기에도 이런 장면은 어리둥절하다. 박용진 전 진보신당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싸잡아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그렇게 손가락질할 때는 언제고 민주통합당에는 왜 갔을까. 

 

탐욕이 많은 자는 가치관보다 이익이 꾀이는 곳을 택하기 마련임을 안다면, 박용진의 선택은 이해가 간다. 자신과 아무리 색채가 맞더라도 그에게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가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에서 나올 당시 감정적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다 비슷한 사람들 천지니 자신이 돋보일 것이 없는 반면, 민주통합당에서는 진보진영 출신으로 희소성을 요구할 수 있는 지분을 기대했을 것이다. 과연 대표 경선에도 도전해 봤고, 공천 1순위라는 말도 들린다. 이전의 늙은 민주당 같으면 들어가고 싶어도 입당할 명분이 안서겠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는 핑계를 내세울 수 있다. 

 

박용진은 민주통합당은 민주당과 다르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이 되면서 색깔을 완전히 갈아치웠다고 믿는 걸까. 믿고 싶었거나,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을 것이 아닐까. 그 당에 참여정부를 망하게 한 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친노의 색깔을 덧입은 것밖에 더 있는가. 민주통합당이 자유무역주의를 반대하나. 비정규직을 반대하나. 한미 FTA는 반대한다고 하겠지. 참여정부가 했던 FTA는 잘한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하는 FTA는 틀렸다고 하겠지. 

 

내 아무리 인간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싶어도 꿋꿋이 지탱해 온 가치관마저 손바닥 뒤집듯 하는 행위까지 너그럽게 대해 줄 생각은 없다. 김문수나 이재오, 뉴라이트 출신들이 그랬듯이 그건 변절이요 훼절일 뿐이다. 양지를 차지하고서도 배신자 소리를 듣기 싫다면 범 잡으러 소굴에 들어간다는 ‘기명삼’ 어법을 관두고 총선 후에도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가난한 정당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연민이라도 부르는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정치야말로 인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교과서는 중도사퇴는 몰라도 신념 체계를 뒤집는 것까지 용인할 아량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변절이 아닌 한, 인간의 약점과 욕망을 최대한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치가 나아간다면 좋겠다. 

 

* 1.27.경남도민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손본 것임.

 

 

* 필자는 <대자보> 편집위원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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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왜 최시중에 침묵하나 시사

이글은 시사인 2012-01-30일자 기사 'KBS는 왜 최시중에 침묵하나'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위험하다. 정용욱이라는 최측근이 거액 수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냥 최측근이 아니다. 최시중 위원장이 정책보좌관이라는 없던 자리까지 만들어 곁에 둔 방통위 실세였고,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인물이다. 최시중 개인 비서였다가 청와대 행정관이 된 부인과 지난해 10월 같이 사표를 내고 해외 도피 길에 오른 정용욱은 지난달 타이(태국)로 갔다가 최근 말레이시아로 더 깊숙이 숨어들었다. 말레이시아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송환이 불가능한 곳이다. 

 

 

ⓒ뉴시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주파수 할당과 EBS 이사 선임에 개입하고, 금싸라기 EBS 사옥 부지를 특정인이 헐값에 차지하도록 힘을 쓰는 데 정용욱 혼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최시중 게이트’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KBS만 봐서는 이런 일을 통 알 수가 없다. 우선 정용욱이란 이름조차 안 나온다(1월8일 KBS 간추린 단신에서 딱 한 번 등장). 취재기자는 실명도 쓰고 속보도 타전하지만 김인규의 KBS는 방송하지 않는다.

 

부족하나마 김학인 구속(1월3일 밤) 직후 시작된 KBS의 정용욱 수뢰 의혹 보도는 1월6일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의혹이 구체화되고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는데 외려 KBS는 카메라를 꺼버렸다. 케이블 업체에서 5억원을 더 받았다는 의혹도, 검은돈이 최시중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됐다는 의혹도, 정용욱이 김학인에게 압수수색 직전에 대비하라고 전화한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이상 1월11일 기준). 

 

왜? KBS는 수신료가 걸려 있다. 지난해 방통위가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수신료 인상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빚도 지고 있다. 이런 상식적인 의심을 해소할 책임은 KBS에 있다. 

 

 

      ‘용가리통뼈뉴스’는 ‘공갈뉴스’와 싸운다. 어찌 싸우는지 궁금하신 분은트위터에서 @YoToNews를 찾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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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나경원 선거 운동원인가` 정치

이글은 시사인 2012-01-30일자 기사 '"경찰이 나경원 선거 운동원인가"'를 퍼왔습니다'

이 최초 보도한 나경원 전 서울시장 후보의 호화 피부클리닉 출입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됨은 물론 발표 시점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이 최초 보도한 나경원 후보의 호화 피부클리닉 출입 의혹과 관련해 “해당 피부클리닉은 연간 회비가 많아야 3천만원대였고, 나경원 후보는 지난해 총 10여 차례에 걸쳐 이 피부클리닉에 다니면서 550만원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나경원 후보 측은 선거 직후 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1월30일 경찰이 발표한 것이다. 

 

경찰은 그동안 나 후보와 해당 업소인 서울강남구 청담동 소재 ‘ㄷ클리닉’ 김아무개 원장의 진술, 그리고 이 병원을 상대로 실시한 압수수색 장부 등에 근거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이 취재한 내용과 다르다. 은 “연간 회비는 1억원이다”라고 김원장이 직접 확인해준 발언 녹취록을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순 나 후보가 호화 피부 클리닉에 출입한다는 제보를 접한 은 사실관계확인을 위해 피부 클리닉을 찾았다. 당시 고객신분으로 클리닉을 찾은 20대 여기자가 피부관리 견적을 요청하자 직접 면담에 나선 김원장은 “항노화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나이든) 여성은 1장을 받지만 20대 여성에게는 항노화 치료가 필요 없어 반장만 받겠다. 반장은 1년에 5천만원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상담 후 간호사도 20대 여기자에게 5천만원이라고 관리 비용을 확인해 주면서 다음날 오후 2시까지 5천만원을 준비해 오라고 말했다. 

 

이튿날 측이 “어제 약속한 연회비 5천만원을 송금할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병원측은 “(결제 방법은) 오후 상담 약속시간에 직접 찾아와 상의해 처리하라”라고 말했다. 은 김원장이 면담과정에서 발언한 이 모든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갖고 있다.

 

이 나경원 후보가 출입한 피부클리닉을 ‘연회비 1억원대’라고 보도한 것은 이처럼 김원장 본인의 사실 확인을 거친 뒤였다. 그러나 10월20일 이 기사가 첫 보도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자 김원장은 기자에게 다시 연락해 “병원이 문 닫을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1억원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연회비 1억원 발언에 대한 녹취록이 있다고 제시하자 그는 ”영업 기법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지 깎아달라면 깎아주려고 했다“라고 발을 뺐다. 

 

이어 취재진이 김원장을 다시 찾아가 만나 ”나경원 후보에게 1억이 아니면 얼마를 받았느냐, 5천만원 선인가?“라고 묻자 김원장은 ”3천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 발언도 녹음돼 있다. 이후 후속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경찰이 압수수색한 장부에는 왜 나경원 후보에게 받은 돈을 3천만원 대신 550만원으로 기재했느냐“라고 묻자 김원장은 ”나경원 후보에게 받은 돈 액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론은 이처럼 ‘1억 피부클리닉’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당황한 김원장이 경찰 조사에서 번복한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경찰이 김원장의 피부클리닉을 압수수색한 시점도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진다. 경찰은 이 사건이 보도된 지 무려 45일이 흐른 지난해 11월30일에야 ㄷ클리닉을 찾아가 장부를 압수했다. 압수한 장부에는 연간 3000만원이 가장 비싼 금액으로 기재돼 있고, 나경원 후보는 550만원을 낸 것으로 적혀 있다는 것이 경찰 발표다. 김원장이 보도 후폭풍에 크게 시달리고 있었고, 나후보 측이 이 사건을 고소한 시점이 10월24일이었다는 점에서 병원으로서는 충분히 경찰 조사를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경찰 조사 발표 내용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중간 발표한 시점도 문제다. 경찰은 나경원 전 의원이 오는 4월 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지 이틀만에 전격적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특정 정치인과 관련된 내용을 뚜렷한 사유도 없이 중간에 언론플레이 형식으로 흘렸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경찰의 정치 중립성을 놓고 적잖은 시비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인은 “발표 시기를 보면 이번 경찰이 마치 나후보의 선거 운동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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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허문도보다 더 나쁘다` 시사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30일자 기사 '"최시중, 허문도보다 더 나쁘다"'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최시중 청문회, 반드시 필요하다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서울 도심에서도 골목마다 거의 눈이 녹을 새가 없었다. 우리들은 취한 발걸음으로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눈물 훔쳐가며 그 미끄러운 눈길 골목들 술집을 끝없이 훑었다. 플라스틱 물바가지에 소주를 붓고 맥주ㆍ정종ㆍ양주 등 술이란 술은 다 섞어서 큰 잔에 나눈 뒤, "통폐합!"이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회사 빼앗긴 설움을 마셔댔다.

 

 

그리고는 진눈깨비에 젖은 개처럼 몸을 떨었다. 아무 짓도 할 수 없음을 자학하며 진저리를 쳤다. 필자는 동양방송(TBC)의 기자였다. 1980년 12월, 그 때 우리들이 이를 갈며 뇌리 깊숙이 담아 갖고 다니던 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허문도 씨였다. 허 씨는 언론 통폐합의 주역이었다.

 

 

필자의 기자 생활은 방송 12년에 신문 18년을 합해 30년여가 된다. 경력은 신문 쪽이 훨씬 많은데도, 지금 더 그립고 애착을 느끼는 것은 신문보다 근무기간이 짧은 방송기자 시절이다. 아마도 대학을 나와 바로 시작한 직장으로서의 '첫 정(情)'도 있겠으나, 언론 통폐합으로 회사를 빼앗기면서 겪었던 고통스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때문에 허 씨에 대한 증오도 더 컸을 것이다.

 

 

 

▲ 1988년 11월 22일 국회 문공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오른쪽부터 허문도 전 청와대 비서관. 한용원 전 보안사 정보처장직무대리. 이병찬 전 검열단장이 80년 언론통폐합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

 

허 씨는 언론 통폐합이 소신이었다고 훗날 청문회에서 말했다. 기본 구상은 △언론과 재벌분리 △방송 공영화 △사이비 기자 정리라 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80년 언론인 대량해직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보안사의 작품이며, "난세적(亂世的) 상황에서는 자유주의적 수단으로 자유를 지킬 수 없다"는, 이른바 난세론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난세적 상황'이 바로 전두환 씨를 비롯한 신군부와 허 씨 자신 등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상황이었음을 실토하지는 않았다. 그 같은 난세적 상황에서 쫓겨난 수많은 기자들과, 정든 회사를 빼앗긴 언론인들이, 80년 그 겨울 울면서 거리를 헤맸다. 몇몇은 얼마 뒤 죽기까지 했다. 허 씨 때문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이 든 언론인들은 지금도 그 해 겨울을 잊지 못한다.

 

허문도 씨는 이 나라 언론사(言論史)를 이야기 할 때, 한 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 허 씨(1940년생)보다 나이는 더 많으면서도 한 세대(30년) 뒤에 등장해, 결코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겨 허 씨와 비교되는 사람이 바로 최시중 씨(1937년생)다. 허문도 씨의 전두환 정권과, 최시중 씨의 이명박 정권을 바로 수평 비교 할 수는 없다. 당장 선거절차를 거친 정당성이 있고 없고부터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허·최 씨 두 개인을 비교 할 때는, 정당성이 결여돼있는 전두환 정권의 허문도 씨가, 정당한 선거절차를 거친 이명박 정권의 최시중 씨 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아니러니가 등장한다. 허 씨가 이른바 '소신'에 따라, 사이비 언론의 극심한 폐해를 나름대로 정리했다는 '실적'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는 특히 두 사람 개개인의 살아온 인생과 '도덕성'을 사람들은 비교하는듯하다. 허 씨가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마디로 최 씨가 도덕성에서 처진다고 했다.

 

두 사람을 다 아는 언론인들은 서슴지 않고 그렇게 말한다. 최 씨는 유력 정치인의 줄을 잡고 1964년 동양통신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줄을 타고 최 씨는 이듬해인 196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된다. 다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1971년, '정치적 행사'와 관련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200만 원을, '어떤 사람으로 부터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구속된다. (바로 이 대목과 관련해 최시중 씨는 작년 3월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장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독재에 항거하다 고문당하고 투옥되기도 했다"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동아일보에서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모두 기절 할 듯이 놀랐다.)

 

결국 그 200만 원을 되돌려 주고 어찌어찌하여 무죄를 선고받아 사태는 수습되었다. 회사에서 최 씨는 사주의 전기(傳記) 쓰는 일을 맡아 매달리기도 했다. 그는 전두환 씨와골프 회동도 했고, 정치인 장관을 찾아가 줄 대기를 하려한 사실이 드러나 사내에서 말썽 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를 '기자다운 기자'로 기억하는 동료는 별로 없다. 2007년 MB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상득 의원과 친구였던 그는 날개를 달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최시중 씨의 언론 다루는 솜씨는 '탁월'했다. 그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었을 때는, 정부 언론 관계가 YS때까지처럼, 정보기관 등에서 언론사별 담당자를 두고, '밀착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최씨는 먼저 말 잘 듣지 않는 사람 사장자리에서 밀어내고, '충성스런 내 사람'을 심는데 결사적으로 매달리며 '일'을 시작했다. 무리를 하면서 그런 구도를 만들어 갔다. 감사원·검찰과 작당해, 죄 없는 정연주 KBS 전 사장을 몰아 낸 것도 그런 수순이었다.

 

 

▲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방통위 브리핑실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오고 있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일단 그게 된 다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새로 앉힌 사장으로 하여금 걸림돌들 제거케 하고, 말 잘 듣는 언론사 만들도록 했다. 이른바 마피아의 underboss(부두목) 시스템이었다. 두목이 부두목 한 사람의 멱살만 잡고 있으면,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멋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체계였다. MBC·YTN도 다 그렇게 했다. 바른 눈 박힌 '반골'들 그렇게 보도일선에서 쫓아냈고, <pd>등 '볼만 한' 프로들 그렇게 숨통을 조여 놓았다. KBS·MBC 보도책임자 불신임 난리도,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다 최시중 씨의 얼굴이 나온다.</pd>

 

그의 공식 직함은 '방송통신'위원장이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직함에 '신문'이 붙어 있었다. '신문'방송통신위원장이었다. '종편(종합편성) 채널'이라는, 아편 듬뿍 바른 당근을 손에 들고,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을 이리저리 멋대로 끌고 다녔다. 조·중·동은 그거 얻겠다고 죽기 살기로 조아렸다. 정신 못 차리고 알아서 기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MB의 '정권 안보'를 위한 언론담당 문지기였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가까스로 제자리 잡아가던 언론풍토는 그의 발길 밑에서 사정없이 유린되었다. 종편에 온갖 특혜 다 주고 미디어렙법 개정 방해하면서, 종편들이 기업에 눈 부라리며, 직접 "광고 내라" 손 벌리고 다니게 하는 '강도 면허'도 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기업의 광고담당자들 따로 불러, 종편 쪽에 광고 물량 늘려 주라고 호통치는, 터무니없는 주문도 서슴지 않았다. 업계를 마구마구 어지럽혀 놓았다.

 

종편들 때문에 광고 수입이 격감했다며, 지역방송·종교방송에서는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도 종편들 시청률은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최씨가 다 같이 죽게 된 판을 짜 놓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통위원회의 다른 고유 업무들도 엉망이었다. 2011년의 정부업무평가보고회에서 방통위원회는 꼴찌판정을 받았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했던가. 최씨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까지 검열하겠다고, 뉴미디어 정보심의팀 신설을 강행했다. '시대착오'라는 이야기가 한나라당에서도 나왔다. 미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정부의 이 같은 표현의 자유 검열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기자가 그랬다. 국제적 망신살이었다.

 

MB정권 들어서기 전인 2007년, 영국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한 한국 IT 산업 경쟁력은 세계 3위였다. 최시중 씨가 방통위원장 되고난 이후 미끄럼타기 시작하던 이 순위가 2011년 19위까지 추락했다. IT강국, 우습게 되었다. 한 눈이나 팔면 다 그런 꼴 당하게 되어있다. "망쳐도 너무 많이 망쳐놓았다"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때맞춰 '양아들 게이트'니, '5만원 권 100장'이니, 이런저런 구린 이야기들도 들리기 시작한다. 사표를 쓴 그는 죄 없다고 시침을 떼지만, 지켜봐야 할 일이다. 검찰수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눈 부릅뜨고 주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평소의 희망대로 최 씨가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을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허문도 씨가 그리 됐듯이, 악몽같던 최시중 씨의 시대도 확실히 정리되어야 한다. 청문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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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정부, 임기말에 수십조 무기구매라니!` 이슈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30일자 기사 '"'먹튀' 정부, 임기말에 수십조 무기구매라니!"'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김종대 편집장 "껍데기만 남은 한미동맹 재검토해야"

 

미국 국방예산은 2013년도에 전년 대비 9% 감소된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26일(현지시간) 2013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을 6130억 달러로 책정 발표했다. 이에 따라 병력 감축도 이뤄진다. 미 육군은 2017년까지 57만 명에서 49만 명으로, 해병대는 20만2000명에서 18만2000명으로 줄어든다.

 

이 소식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는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태며 다음 달부터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들이 자칫 긴장 고조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다음달 27일부터 '키 리졸브' 훈련이, 3월 1일부터 두 달 간 야외 전술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이, 또 3월 중 해병대 상륙 훈련인 '쌍룡훈련'이 계획돼 있다.

 

패네타 장관은 예산·병력 감축에도 한반도나 중동에 '상당한' 규모의 지상군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월러드 미 태평양사령관도 27일 "새로운 국방전략으로 인해 주한미군 운용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을 믿고 안심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안보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미국의 '립 서비스'만 믿고 가만히 손 놓고 있었다가는 2012년 각국의 정권 교체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만 미아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종대 편집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도 튼튼해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명박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서부터 이미 삐걱거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동맹 약화의 시발점은 미국의 국력 약화다.

 

김 편집장은 26일 진행된 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 며칠 후 한반도에 또 한차례의 전화(戰禍)를 불러올 뻔 했던 한국군 지도부의 무능과 보수세력의 한미동맹 맹신주의를 질타하며, 현실을 바로 인지해야 하며 한미동맹 전면 재검토 등 근원적 성찰과 대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김 편집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프레시안(곽재훈)

 

"증원전력 69만? '옛날'에 유명무실화된 작전계획"

 

프레시안 : 지난 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두 개의 전쟁'을 포기한 새 국방전략을 발표한 이후 한반도 안보가 약해질 수 있다는 불안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군 증원전력이 감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 언론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김종대 : 작전계획(작계) 5027에 따라 미군 69만 명이 한반도에 파견된다는 것이 전통적인 안보 공약이자 '강한 한미동맹'의 지표였다. 그러나 증원 전력 규모가 69만 명이라는 계획은 이미 지난 21세기 초에 현실성을 상실했고, 적은 병력을 가정한 새로운 '우발계획'(contingency plan)으로 전환돼 있다. 또 2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증원 규모나 주한미군 병력 수로만 동맹을 논한다면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고 의미도 없다.

 

69만 증원 계획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은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드러났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증원 규모가 한미동맹을 평가하는 지표가 됐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에 대해 재검토를 하려고 하니, 국방부에서 전시지원 규모를 들이대면서 말리고 나섰는데 이 역시 잘못된 설명이었다.

 

사실 '69만 증원군'은 자기최면에 빠진 보수주의자들의 신화에 불과하다. 유사시에 미군이 해외에 69만 명의 증원군을 보내준다는 말은 '립서비스'였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시차별 부대 전개 목록'(TPFDD)이다. 이는 작계 5027에 따라 미군의 어떤 부대가 어떤 시기에 한국에 순차적으로 전개될지를 담은 목록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 내용을 알아야 할게 아닌가. 하지만 한국군은 이 내용에 접근할 수 없게 돼있다.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의도대로 계획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69만이란 규모는 냉전의 최절정기였던 레이건 행정부 때 나온 수치다. 당시 미군 전체 규모가 240만일 때다. 지금은? 140만이다. 해외 파견 미군들도 본토로 많이 복귀시켰다. 이는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의 안보전략이 본토 방어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속화됐다. 이처럼 20여년 동안 미군은 체질과 속성을 다 바꿨다.

 

프레시안 : 오바마 대통령의 새 국방전략 발표 이전에 이미 이같은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인가?

 

김종대 : 그렇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때에는 이런 경향이 더 심화돼서 작계 5027을 평가절하하는 단계에까지 왔다. 2002년 리언 라포트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남신 합참의장을 찾아와서, (5027이 아닌) 5026같은 별도의 작전계획을 통해 북한을 제압할 수 있다고 설득하려 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은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우리 측에게 통보했다. 흔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를 표방하니까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군사지원을 줄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 참여정부 출범 훨씬 이전에 미국이 전략개념을 바꾸고 변혁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노 전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표방한 것이다. 미군이 피를 흘리기 싫다는데 국방을 해도 우리가 하겠다는 것이 자주국방이고 전시작전권 전환이었다.

 

미국이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연합군사령군을 맡은 이유가 뭔가? 압도적으로 많은 물자와 병력을 미국이 담당했기 때문 아닌가? 지금까지는 미군이 유사시 압도적인 지원을 한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연합사령관을 미군에게 위임했다. 그런데 미국이 그런 지원을 못 한다고 하면 우리가 국방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연기하고 동맹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과거에 끊어진 미국의 지원을 다시 복원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고강도 전력을 투입하는 대신 10~20만 정도의 소수 병력을 가지고도 한반도에서 공세적 작전을 할 수 있다는 개념계획 5029나 작계 5026, 5028, 5030과 같은 별도의 '우발계획'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미군의 한반도 전략 중심은 그리 옮겨갔다. 5027을 없애지 못한 건 한미 간의 전통적인 신뢰 문제 때문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사령부를 유지하고 5027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수준에서 정리된 것으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작계 5027도 여전히 유효한 계획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가?

 

김종대 : 매년 유지하면서 형식적으로 연습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2002년 이후 우발계획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미국은 북한이 탱크를 몰고 부산까지 쳐들어와서 몇 달씩 끄는 그런 전쟁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미 2006년에 미 합동전력사령부(JFCOM)가 검토를 마친 사항이고 미 합참에도 보고된 내용이다. 지금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수정예로 이뤄진 신속대응군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장에 투사(projection)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하면서 과거의 '전통'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혹세무민해왔다. 그러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새 국방전략으로 미국의 변화 실체가 드러나니까 마치 감전된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은 또 침묵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하지만 한국군의 입장에 따르면 다음달 있을 '키 리졸브' 훈련은 작계 5027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대 : 과거 한국은 미국이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얘기하니 개념계획 5029를 중시한다는 계획을 덥석 받아갔다. 키 리졸브 훈련 같은 데서 오히려 5029를 연습하는 것을 직접 홍보하기도 했다. 5029는 아직 작전계획으로까지는 구체화되지 않았고 개념계획과 작전계획의 중간 정도 상태다.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이게 한국에 족쇄가 됐다는 것이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5027보다 5029를 앞세우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 정치적으로 써먹었던 것인데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급변사태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5029를 연습한다면 현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이게 굳어지면 정권이 바뀐다 해도 훈련 내용 등을 바꾸기 어렵다. 미국에 말려들어 남북관계 조정이 어려워지게 된 부분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덥석 받아들인 게 또 있는데, 한미일 군사동맹이다. 미국-일본 간 외교안보 관련 회동이 있으면 마치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한미일 동맹을 꼭 언급하고 있고 미일 회담 후 발표에까지 넣었다. 한국이 없는 자리에서 저렇게 자신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매우 이상한 일이다.

 

한국 정부가 사전에 양해해 줬거나 공감해주지 않았다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 정부는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전략적 검토가 심도 있게 이뤄졌다는 심증이 가는 부분이다. 한미동맹을 지나치게 확장한 결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싶다.

 

"한미동맹, 껍데기만 남았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들어 겉으로는 강화된 것 같은 한미동맹이 실질적으로는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중대한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인가?

 

김종대 : 지원받던 것들이 다 끊어졌다. 가장 큰 것은 정보지원이다. 이라크·아프간 전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 국방부의 한반도 정보 분석가들이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겨 한반도 정보를 분석하는 인력 체계가 붕괴된데 따른 것이다. 그러니 첩보가 수집돼도 분석할 사람이 없다. 미국이 제공하던 정보 지원이 약화된 것은 중동에서의 전쟁이 한미동맹에 미친 가장 치명적 영향이다.

 

한반도 동향을 감시할 정보자산도 없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무인정찰기를 달라고 해도 지원이 없고 그나마 있던 U-2 고공정찰기도 철수시킨다고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한미 군사 당국 간 정보 분야 공조에서 눈에 띄게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아파치 헬기 부대도 이라크로 가 버렸다. 전 세계 미군 사령부 중에 4성 장군 휘하에 아파치 전력이 없는 군대는 주한미군밖에 없다. 포병도 단계적으로 철수해서 이미 북한과의 대(對)포병전은 미군이 아닌 한국군 임무가 돼있다. 쓸만한 전력이 없다.

 

운영도 빈사상태다. 미군들이 출장비가 없어서 출장을 못 다닌다. 미군부대에서 고용한 한국인 근로자도 절반 수준으로 줄여서 지금 동두천에서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지 않나. 이런 문제 때문에 주한미군사령관이 긴급 회의를 개최한 적도 여러 번이다.

 

동맹의 기초체력이 약화되는 지표가 모두 나타난 것이다. 현 정부는 한미동맹이 '범세계적 가치동맹'이라고 하면서 한미동맹의 힘이 지구로, 우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서 강화됐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이게 뭔지 모른다. 한미동맹이 한국 영토방위를 위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한반도 방위하기도 바쁜데 갑자기 아무 것도 아닌 말들만 나온다.

 

프레시안 : 그래도 기존에 없던 합의체나 안보 관련 협정들도 새로 맺어진 부분도 있는데.

 

김종대 :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 지표라고 했던 것 중에 또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해 2010년 만든 '확장억제위원회'(EDPC)가 있다. 이게 국민들에게는 핵부터 재래식 전력까지 미국이 모든 전력 지원을 다 해줄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위원회는 지원 전력 목록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개념 연구'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곽재훈)

원래 없는 '확장억제'라는 개념을 연구하려니까 내용도 없다. 확장억제라는 게 뭔가? 핵우산은 원래 있는 거다. '확장'됐다고 해서 배치된 핵탄두 수를 늘리거나, 유사시 핵무기를 쏘는 결심을 빨리 하는시스템을 만든다거나 이런 게 전혀 아니다.

 

그나마 한미 양국군 장교들 사이에 제일 많이 토론되고 있는 건 미사일방어체계(MD)인데 북한 미사일 방어를 주한·주일미군의 지휘체계 하에서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거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내딛는 순간 기초 비용만 11조 원을 빨아들이는 '돈 먹는 블랙홀'로 빠진다. 게다가 MD 참여는 중국을 자극하게 된다.

 

주한미군이 가족을 데려와 3년 정도 장기 주둔하게 한다는 계획도 한미동맹이 강화된 지표로 이명박 정부에서 선전한 것인데 패네타 장관이 취임하면서 관련 예산을 다 잘라버렸다. 아마 앞으로는 이 얘기가 다시 안 나올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200년만에 돈 꿔서 전쟁할판"

 

프레시안 : 한반도를 포함해 미군의 해외 전략이 변화한 근본 원인은 어디 있을까?

 

김종대 : 현재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20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에서 돈을 꿔서 전비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미국이 발행한 9조 달러의 채권 가운데 반을 외국이 샀고 가장 많이 산 나라가 중국이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전략은 사실 중국을 겨냥한 것인데 중국에서 빚을 내서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미국 내에서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초당적 특별위원회가 합의에 실패하면서 향후 10년 간 6000억 달러 규모의 국방예산을 줄여야 한다. 이런 규모의 감축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지상군을 대폭 줄여야 하며 한국과 독일 등 해외파병 미군의 규모를 재검토하고 무기획득 계획도 구입 시기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또 지금까지는 육해공군 전력을 골고루 감축시키는 선에서 버텨왔지만 6000억 달러 감축이 일어나면 아예 어느 한 분야를 버리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 방산업체들이 고사 상태에 들어간다.

 

여기에 오바마 행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 방산기업인 보잉이나 록히드 등은 대규모 조립 라인을 통해 막대한 수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국민 기업'이다. 그러나 미 국방비가 줄어들어 (생산)물량이 감소하면 조립 라인을 유지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근 보잉이나 록히드는 수천에서 수만 명의 직원 을 감원했다.

 

미국의 방산업체는 막대한 세수, 국채발행 능력과 함께 미국의 2차대전 승전 요인 세 가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모두 무너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기초체력이 이렇게 약화된 적이 없다. 보수세력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자주·반미를 표방해 한미동맹이 약화됐다고 하는데 정작 동맹의 기초체력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급속도로 약해졌다.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승격시킨 MB, 코 꿰인 셈"

 

프레시안 : 한미동맹의 기초체력이란 결국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할 미국의 국력일 텐데, 이같은 미국 국력의 약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김종대 : 미국 국력의 핵심 지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패네타 장관은 당시 SCM에서 전체 회의 2시간 반 중 1시간 반 동안 한국 국방비 증액 문제만 얘기했다. 미국이 국방비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증액해 지역에서의 역할을 수행해달라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을 '범세계적 가치동맹'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2009년 이명박-오바마 대통령이 합의한 '한미동맹 미래비전'의 내용 : 편집자) 지역적 차원의 동맹이 세계적 차원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달 초 김 편집장은 패네타 장관의 요구가 국내에서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으로 잘못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핵심은 그게 아니라 국방비 증액이라는 것인가?

 

김종대 : 미국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6% 수준인 한국 국방비를 70% 가까이 늘려 GDP 대비 4%까지는 올리라는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이런 큰 흐름에 비한다면 오히려 작은 문제고 2013년에 재협상하게 돼있으니 아직 때도 안 됐다.

 

미국이 한국에 가하는 압박은 크게 3가지다. 첫째가 국방비 증액, 둘째가 평택 미군기지이전사업, 셋째가 방위비분담금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를 높이 평가할 부분도 있다. 동맹 원칙 등은 다 합의해 주면서도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드는 돈 같은 건 깐깐하게 안 쓰고 버티면서 약게 빠져나온 측면도 있다. 이런 부분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틸 수만은 없다는 게 문제다. 이 대통령마저도 정권 말기에 14조 원이 드는 미국산 무기 구매를 추진하고 있지 않나. 이는 미국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미국 방산업체의 조립라인을 유지하는데 한국의 무기 구매는 절대적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이렇게 해 주는 나라가 한국밖에 더 있나.

 

"F-X 사업, 올해 안에 선정 완료하긴 힘들 것"

 

프레시안 : 얘기가 나온 김에 무기도입 사업 얘기를 좀 해 보자. 정부는 차세대 전투기(F-X)와 대형공격헬기(AH-X),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 모두 연내에 기종 선정을 마친다고 하고 있다.

 

ⓒ프레시안(곽재훈)

김종대 : 사실 그 부분은 작년 10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급히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국방부는 제쳐 놓고 기획재정부 예산관리실장을 직접 불러 대통령이 충분한 예산을 갖고 미국에 갈 수 있도록 조정했다. 그리고 김태효 당시 대외전략비서관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여름에 차례로 미국을 다녀왔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 정권에 전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돈 지출되는 시기는 다음 정권이니 자기들은 올해 10월에 서명하고 나가겠다는 거다. 이 경제위기에, 그것도 복지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반도 환경에 맞지도 않는 무기를 10조, 20조를 들여 사겠다니 이런 우매한 짓이 어디 있나.

 

프레시안 : 한반도 상황에 맞지 않는 무기라면?

 

김종대 : 지금 도입하려 하고 있는 것은 세계 최고 성능의 무기다.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는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한 한국군의 방위 범위를 완전히 넘어서서 중국의 상당부분까지 커버할 수 있는 고성능 장비다. 이는 종심(從心)이 짧은 특성을 가진 한반도 전장에는 성능이 과한 무기다.

 

F-35 전투기도 5세대 전투기라고 하지만, 5세대라는 개념 자체가 무기 팔아먹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다. 또 굳이 스텔스기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소수 전투기를 적진 깊숙이 은밀히 침투시켜서 주석궁을 폭파한다는 식의 작전은 성공 가능성도 낮고 허무맹랑하다. 그보다는 기존의 전투기와 토마호크 미사일 정도를 결합해서 잘 운영하면 4세대 전투 정도의 개념으로 싸울 수 있다.

 

프레시안 : 정말로 10월에 계약이 성사된다면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느낌인데.

 

김종대 :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어 어려울 것이다. 전투기 시험평가를 어떻게 한 달 만에 하나. 수천 페이지짜리 제안서를 내면 그걸 읽어보고 평가하는 데만 몇 개월 걸린다. 거기에 기종 평가하는 데만도 몇 개월, 또 몇 달 걸려서 가격 협상해야지 기술이전 협상해야지 그러다 보면 통상 2~3년 정도는 소요된다.

 

그런데 작년에 예산 배정해서 아직 제안서도 안 나왔다. 10월 말에 계약서에 서명한다는 건 뭔가 변칙 또는 날림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먹튀', 즉 사인하고 튀겠다는 거다. 이렇게 몇 달 안에 무기도입 계약을 맺는 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이다. 기존 절차 무시하고 섣불리 서명했다가 나중에 청문회라도 열리면 어쩔 건가.

 

게다가 F-X 사업에서 유력한 기종으로 알려진 F-35는 아직 개발도 안 끝난 무기다. 개발 실패하면 계약금은 어찌 회수하나? 또 어찌 개발은 됐다 쳐도 2016년부터 도입한다는 계획도 말이 안 된다. 미 공군에도 아직 도입이 안 된 기종이다.

 

프레시안 : 선정 과정이나 진행 절차에서 시민사회나 언론의 감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김종대 : 그건 당연하지만 사실 그냥 놔둬도 10월 안에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결정권자가) 워낙 밀어붙이는 걸 좋아하니 박박 우기고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계획은 비현실적이라는 전문위원 보고서가 나왔다. 육군에서 도입한다는 아파치 헬기도 미국이 대만에 900억 달러, UAE에 1000억 달러에 판 걸 우리는 400억에 들여온다는 얘긴데 어디 한 번 해 보라고 해라. (웃음)

 

이런 안 될 얘기를 하면서 10월까지 굳이 도장을 찍겠다는데 전후 사정을 알아보긴 한 건지 모르겠다. 공군 비행기들이 노후했으니 굳이 필요하다면 새 비행기를 사오자는 것은 개인적으로 찬성이지만, 군을 위해서라도 합리적 절차를 준수하는 게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이 충분히 검토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끌고 가겠다는 건 한미동맹을 정치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밖에 안 된다. 무리수를 둔다면 정권 최후의 패착이 될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쏴라' 지시에 전쟁 날 뻔"

 

프레시안 : 미국의 국력 쇠퇴로 한미동맹이 내용적으로는 약화된다는 지적인데, 한국에 대안이 있을까?

 

김종대 : 동맹을 고쳐서 써먹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국 국민의 요구와 국익에 맞게 동맹 자체의 성격을 근원적으로 재검토하는 조정 및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국 방위를 미국의 선의에 맡긴다는 사고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맞춰 안보에서의 당사자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체제라는 장기적 전망까지 연결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미국의 국방비 감축이 군사력 약화로 이어지는데 대한 대비도 있어야 할 것을 보인다.

 

김종대 : 지난해 미국 군사예산 삭감이 결정됐을 때, 책임 있는 정부라면 국방·외교·경제·정보 합동으로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을 긴급 점검하는 대책반을 만들었어야 한다. 지난 1997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 그런데 미국의 재앙을 앞두고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대책을 고민했다는 것은 들어본 적 없다.

 

15년 만에 한미가 뒤바뀐 입장인데 우리는 왜 이리 태평한가.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좋고 미국에 재정적 어려움이 있어도 한미동맹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는 미국의 판에 박힌 공약을 맹신하고 있어 어떤 공무원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한미동맹을 따뜻한 엄마 품처럼 여기고 동맹에 의존하려는 '공짜 심리'가 불치병처럼 박혀 있어 변화된 현실을 보지 않으려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신화는 구체적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전략의 판을 다시 짜는 긴급한 대책과 모색, 성찰이 없다면 2012년 각국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난 이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졌을 때 한국은 낙오될 것이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혼자 망망대해에 떨어지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내적 역량을 강화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미동맹 약화는 그 계기다.

 

 

ⓒ프레시안(곽재훈)

 

프레시안 : 그렇다면 오는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앞두고 있는 현 단계에서 한국군의 내적 역량은 어떤 정도 수준일까? 지난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합참의장 회담에서 양 측은 북한 국지도발 공동대비계획을 위한 전략기획지침(SPD)에 서명했는데, 여기서도 주도적 역할은 한국군이 맡게 돼 있다.

 

김종대 : 국지도발 공동대비계획은 2010년 연평도 사태 때 드러난 한국군의 낯뜨거운 무능력이 미국에도 골칫거리였다는 뜻으로 읽힌다. F-15K 전투기로 도발 원점을 타격하네 마네 하다가 이걸 미국에 물어보고 쏴야 한다는 게 논란이 됐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교전수칙 문제도 나오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한국이 헤매지 않게 계획을 정리해 준다는 차원에서 미국이 급히 제안해 이 계획이 나온 것이다. 물론 미군이 서해에 들어가 총 들고 싸워 준다는 얘기는 아니고 '정리'만 해준다는 것이다. 한국이 주도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한국에 부족한 정보자산 지원 같은 부분이나, '물어보고 쏠까 그냥 쏠까' 이런 논쟁이 안 나오도록 미리 정리하는 차원이다.

 

이 계획을 세우면서 미국이 자기들 입장에서 이용한 측면도 있다. 미국은 그간 북방한계선(NLL)은 남북한 간의 문제라고 했지만 이 계획을 만들면서 최초로 'NLL을 수호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미군이 개입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는 주일미군의 지원을 받아야 할게 아니냐며 이 계획을 한미일 3각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활용했다.

 

또 그 이면에는 김관진 장관이 '도발 원점과 그 배후 지원세력까지 타격하겠다'고 한데 대한 미국의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전쟁날 것 같으니 계획을 미리 세우고 그에 따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 직후에도 전쟁이 날 뻔했다. 사건 며칠 후 중국 어선과 같이 북한 경비정이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합참의장은 실탄사격을 하라고 했지만 해군 2함대사령관이 "중국 어선이 있기 때문에 쏘면 안 된다. 작전예규에도 못 쏘게 돼있다"고 저항했다. 합참의장은 화를 내며 재차 사격을 지시했지만 때마침 합참을 방문한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크게 놀라며 쏘지 못하게 했다.

 

그 즈음에 동해에서도 긴장이 고조된 적이 있었는데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합참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 무리한 발포 명령이 있을 거라고 보고 '함포건 어뢰건 내 통제를 받고 발사하라'는 지침을 시달했다. 합참은 이에 대해 군정권(軍政權)만 있는 참모총장이 군령권(軍令權)을 침해했다고 반발해 합참의장과 해군참모총장 간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합참의장 명령대로 했다면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한국군 지휘부가 상당한 내분을 겪었고 이런 가운데 몇차례 큰 분쟁 위기가 있었지만 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연평도 사태 때 '교전수칙'이 문제가 된 것도 그렇다. 연평도 사태 다음 날 대통령의 첫 지시가 교전규칙 개정을 검토하라는 것이었다. 상황을 보면 연평도 사태 당시 대통령은 K-9 자주포 말고 전투기나 함포로 쏘라고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함포는 준비된 게 없었고 당시 떠 있던 전투기가 공대지 공격이 가능한 무장을 달고 출격했는지도 몰랐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대통령에게 '미국에 물어보고 쏴야 한다'고 허위 보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다음날 '교전규칙 개정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왔을 것이고 합참에서는 당연히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합참은 실제로 북한 포격 도발시 전투기로 보복공격을 하는 것이 자위권 차원인지 교전규칙의 문제인지 연구용역을 발주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전쟁 나면 국제변호사 불러서 법전 펴놓고 법률자문 받아가면서 하겠다는 건가?

 

 

 

/곽재훈 기자,황준호 기자


P 깊은호수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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